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크라이나 대기근 (문단 편집) == 이후의 전개 == 여하간 대기근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자체에 대한 차별은 심각했기에 [[독소전쟁]]이 터진 뒤 [[독일 국방군]]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자 다른 지역들과 달리 주민들이 '우리의 해방자'라고 외치며 [[꽃다발]]을 들고 나와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진풍경을 보여주었다. 물론 새로운 지배자들의 [[아인자츠그루펜|진면목]]이 드러나면서 환영의 열기도 다 사그라졌다. 이 때문인지 독일군이 소련 주민들을 사람으로 대하고 인종주의적인 편견을 조금만 자제했어도 우크라이나 등 수많은 소련 국민들이 줄줄이 [[독일]] 편이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아돌프 히틀러|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의 인종주의적 편견이 자신들 스스로를 망친 셈이다. 하지만 이들 중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들은 홀로도모르와 [[대숙청]]을 전후하여 이미 다 사라진 후라 전쟁에는 별 도움이 안되었다. 하지만 소련과 스탈린은 이 사태에서 뭔가를 배우기는커녕 소련의 식량 상황을 더욱 나쁘게 했다. 이 때 대두되던 인물이 바로 [[트로핌 리센코]]였기 때문이다. 리센코는 스탈린의 지지 아래 우크라이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인재는 자신밖에 없다고 설치고 다녔으며 바빌로프 같은 학자들이 서방의 부르주아 학문을 들여왔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발생하였다고 공격했고 [[대숙청]]의 피바람 속에 바빌로프와 그를 따르던 유전학자를 수용소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결국 소련의 농업은 회생 불가능할 수준으로 퇴보했으며,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식량을 미국에서 수입하게 되었다. 그나마 1950년대 이후에는 소련이 이전처럼 고립되던 상황은 아니었기에 기근은 없었다지만 어찌되었던간에 엄청난 국토를 지닌 것과는 별개로 상당한 외화를 곡물 수입에 써야 했고 소련 농산물 생산에서 [[별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해졌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농업 생산성 하나만큼은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다. 원래 [[동유럽]]에서는 농업 기술 발전이 늦어지고 농노제가 오래 유지되었던 데다가 농민들이 수확한 밀을 수출해서 귀족들의 사치품을 수입하던 역사의 영향으로 부드러운 흰 빵, 육류, 낙농, [[채소]] 같은 다양한 식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고위층에 한정되었다. 중산층 이하 일반인은 [[호밀]] 등으로 만든 거친 검은 빵과 '카샤'라는 죽 중에서도 재료가 저렴한 것만 주식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지역이 대부분이지만[* 러시아는 소련 붕괴 후에는 곡물 생산이 소련 이전 시절로 회복되긴 했지만 토지의 비옥도가 낮다 보니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농산물의 품질이 낮은 편이다. 2014년에 미국과 유럽이 경제제재를 한것에 푸틴이 빡쳐서 미국, 유럽산 농수산물 수입을 금지했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반발이 심했으며 유럽산 치즈와 버터 밀수가 한동안 활개를 쳤다.] 이 기근으로 더 심각해졌다. [[독소전쟁]] 당시의 [[소련군]] [[전투식량]]을 보면 주 품목은 돌덩이 [[빵]]이나 날감자, 청어 머리 같은 것으로 맛도 없고 단단해서 먹기도 고역인 물건이 대다수였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계란]] 따위는 귀중품이었다. 이는 1960년대 후반까지 계란을 하나씩 짚을 이용해서 정성들여 묶은 것이 큰 선물이 되었던 대한민국의 과거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쇼프]]가 집권하기 전인 [[1950년대]] 초반까지 우크라이나에서는 소련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존재했다. 그나마 흐루쇼프가 집권한 후 [[크림 반도]]를 떼어서 우크라이나에 주는 등 거의 노골적으로 고향을 우대한 덕분에 반감을 많이 감소시킬 수 있었고, 흐루쇼프의 뒤를 이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브레즈네프]]도 우크라이나 출신이어서 사태는 그제서야 진정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당시로서는 행정구역 변경 정도의 수준이었기에 괜찮은 방법이었지만[* 다만 흐루쇼프로서는 소련이 붕괴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으며 당시까지만 해도 소련의 성장세는 괜찮았기에 앞으로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취지([[당신들을 묻어버리겠다]])의 발언도 했던 사람이었기에 흐루쇼프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일이기는 하다.]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에 차라리 물자나 투자를 퍼 주었다면 모르지만 [[크림 공화국|땅과 인구]]도 함께 퍼 주는 바람에 [[붕괴 후 혼란기|우크라이나 독립 이후부터]] 문제가 생겼고 [[유로마이단]]을 통해 2014년부터 격렬하게 불타오른 우크라이나 민족 갈등의 불씨를 심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